이언적 선생 고택 (독락당)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자료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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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한창 잘나가던 중년 시절 뜻하지 않게 반대파에 의해 정계에서 축출당해 낙향하면서 은거생활을 하기 위해 지은 별서이다. 독락당(獨樂堂) 홀로 즐거운 집. 즉 이 집은 인간사회와는 절연하고 자연을 벗삼기 위해 지은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인상은 낮추기와 감추기라고 말할 수 있고 대신 자연을 향한 쪽으로는 열려진 그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로 말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별서로 소쇄원이 인공적인 자연을 조성하며 교우를 위한 공간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대문에서 들어서면 복잡한 미로와 같은 벽과 담장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골목과 샛마당이 지극히 패쇄적인 느낌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계곡이 흐르는 쪽으로는 아예 담장을 살창으로 뚫어 마루방에 앉아 창을 열고 그 살창을 통해 계곡 물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절벽에 다리를 걸치고 서있는 정자며 심지어는 담장 밖으로 떠있는 측간까지 자연과 어울러져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회재는 또한 스스로 독락당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계곡의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주변 자연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주변의 여러 봉우리들 중 네 개를 골라 북쪽을 도덕산이라 하여 주산으로 남쪽은 무학산이라 하여 안산으로 동은 화개산 서는 자옥산이라 하여 도학적 상징으로 삼았으며 계곡의 숱한 바위 중에서 다섯을 골라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라 하여 기능을 부여하고 은거를 위한 특별한 장소로 이용했다. 책을 보다 살창을 통해 물과 고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약쑥과 꽃밭을 가꾸기도 하며 계곡에서 시도 읊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주변 산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회재는 지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밀어낸 반대파에 대한 분노와 회한, 자성과 좌절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을텐데 위기를 또 다른 도약을 향한 기회로 활용하여 심신을 수양하는 계기로 삼고 더 크고 원숙한 사상을 이루는 큰 학자와 사상가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독락당은 그런 회재의 사상과 학문을 이뤄내는 은둔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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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美와鄕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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