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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춘천남이섬-1(2014.07.5)

 

가평여행/ 선배님과 함께하여 즐거웠던 남이섬

 

 

 

 

한국 속의 동화적인 상상나라, 창의적인 동화나라 남이섬은 문화예술 자연생태의 청정정원으로
다양한 전시와 문화행사,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해 오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연인들에게는

 사랑과 추억을,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창작의 터전과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상호 : 주식회사남이섬
설립 : 1966년 12월 23일
업종 : 종합휴양업
대표 : 강우현

 

평상시에는 육지였다가 홍수가 나면 섬으로 변하던 불모의 땅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을 만들 때 북한강 강물이 차서 생긴 내륙의 섬으로 선착장은 경기도, 섬은 강원도에 있습니다.

둘레 5km, 면적 43만 평방미터의 남이섬은 1468년 28세의 나이에 용맹이 꺾인 남이장군의 이름을 따서 불리운 이름입니다.

1965년 한국 최초의 출판사 ‘을유문화사’를 설립하고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하신 수재 민병도 선생(1916~2006)이 토지를 매입, 모래뿐인 불모지에 다양한 수종의 육림을 시작하였고

1966년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 설립, 종합휴양지로 조성하여 오던 중

90년대 말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을 극복하고자 2000년 4월 주식회사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남이섬의 유래

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붙어 있는 육지로서 홍수 때만 섬이 되었다가

1944년 청평댐이 만들어 지면서 온전한 섬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북한강에 떠 있는 반달 같은 남이섬

넓이 약 46만 평방미터, 둘레는 약 5km로 여의도 면적의 5분의 1 쯤 됩니다.

 행정구역상 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주차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입니다.

전설 속의 돌무더기, 남이장군묘

남이섬은 남이장군묘의 이름을 따서 남이섬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 집니다.

 섬 북쪽 언덕에 남이장군묘라고 전해오는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이 돌을 옮기거나 집으로 가져가면 액운이 낀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1965년에 섬을 매입한 수재 민병도 선생이 봉분을 만들고 추모비를 세웠으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추모글을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썼습니다.

남이장군(1441~1468)

남이장군은 조선 세조 때의 무신으로 태종의 외증손이며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 하였습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반란을 토벌하여 적개공신 1등에 올랐으며

 27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평소 그를 시기하던 유자광의 모함을 받아 처형 되었습니다.

 1818년(순조 18) 복권 되었습니다. 시호는 충무(忠武).

남이장군 시 (北征歌)

白 頭 山 石 磨 刀 盡 백 두 산 석 마 도 진
豆 滿 江 水 飮 馬 無 두 만 강 수 음 마 무
男 兒 二 十 未 平 國 남 아 이 십 미 평 국
後 世 誰 稱 大 丈 夫 후 세 수 칭 대 장 부

백두산의 돌은 칼 갈아 다하게 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에 먹여 없애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이 시로 인하여 (간신 유자광이 未平國을 未得國으로 조작) 남이장군은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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