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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주 태종무열왕릉 (2026. 05.)

 

 

 

 

경주 태종무열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 남쪽으로 뻗은 구릉 말단부에 자리하며,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본명 김춘추, 재위 654~661)의 능으로 알려진 대표적 왕릉이다. 이곳은 1963년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정면적이 1만 4천㎡가 넘는 규모로, 서악동 고분군(사적)의 일부이면서도 구조와 사연이 가장 뚜렷하게 전해지는 왕릉으로 평가된다.encykorea.aks+2

 

무열왕은 신라 중대에 등장한 진골(眞骨) 출신 최초의 왕으로, 중국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그는 661년에 돌아가자 왕호와 함께 태종(太宗)이라는 묘호와 무열(武烈)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당시 영경사(永敬寺) 북쪽 구릉에 안장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무열왕릉은 신라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특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례로, 학술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wikipedia+3

 

현재 왕릉은 아직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내부 구조는 추정에 의존하지만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일 가능성이 높다. 봉분은 높이 약 13m, 둘레 112m 정도의 비교적 큰 원형 봉토분이며, 다른 통일신라 왕릉에 비해 봉분 장식이 상대적으로 소박한 편이라, 왕권의 상징보다는 절제된 분위기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봉분 주변에는 자연석을 이용한 둘레돌이 배치되어 있어, 대릉원 일대의 둘레돌 구성과는 또 다른 지역적 텍스트를 보여준다.digital.khs+2

 

무열왕릉 앞 동북쪽에는 국보 제25호로 지정된 태종무열왕릉비(경주 태종무열왕릉비)가 자리 잡고 있다. 비는 본래 비신(碑身)을 포함한 전형적인 석비 구성이었으나, 현재는 귀부(거북 모양 받침돌)와 이수(머릿돌)만 남아 있고, 이수 전면에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전서(篆書)가 양각되어 있어 이곳이 무열왕릉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머릿돌과 비편 조각은 1935년 무열왕릉 주변에서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nrich+2

 

서악동 일대의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등 서악동 고분군과 함께 방문하면, 무열왕릉은 이 왕릉군의 앞마당이자 축을 이루는 핵심 장소로 기능한다. 서악동 고분군 4~5기의 대형 원형 봉분이 능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는 반면, 무열왕릉은 그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제후왕릉과의 위계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배치를 취하고 있다.gyeongju+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