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년)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 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있다.
총건평 1,051.24m²(318평)으로, 긴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문 밖에는 수백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선교장의 사랑은 열화당이라하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글,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 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 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동별당(東別堂)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 자료: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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