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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합천 영암사지(2014.05.11)

 

 

문화재 소개

영암사터는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 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절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귀부 등 각종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 있으나

 기둥 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 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시기는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

 

 

 

 

 

 

 

 

 

 

 

 

 

 

 

 

 

 

 

 

 

 

 

 

 

 

 

 

 

 

 

 

 

 

 

 

 

 

 

 

 

 

 

 

 

 

 

 

 

 

 

 

 

 

 

 

 

 

 

 

 

 

 

 

 

 

 

 

 

 

 

 

 

 

 

 

 

 

 

 

 

 

 

 

 

 

 

 

 

 

 

 

 

 

 

이 귀부(龜趺) 2기는 영암사터 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남아 있다.

 영암사의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절터 안에는 법당터를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단(基壇)이 남아 있어 당시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 원래는 그 위로 비몸돌과 비머릿돌이 얹혀져 있었을 것이나

 양쪽 모두 지금은 귀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동쪽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碑座)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서쪽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배열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는 4면에 안상(眼象)을,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다.

 서귀부는 동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거의 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동쪽의 귀부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다.

 이 귀부 2기는 각 부 양식이나 주위의 석조유물 등과 관련지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글자료 :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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